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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22 [모디의 친구들] 보헤미안들의 대변가, 시인 막스 자콥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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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자콥의 생전 모습

유태계 시인 막스 자콥은 1876년 프랑스 브르타뉴의 수도 캥페르에서 태어났다. 그는 22세가 되던 해 프랑스 파리에서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그곳에서 아직 젊은 화가였던 파블로 피카소와 친분을 맺게 된다. 자콥은 피카소에게 자신의 아파트에서 함께 살 것을 허락했으며, 피카소가 경제적으로 자립에 성공해 아틀리에를 얻자 그의 아틀리에에 훗날 유명해지는 ‘세탁선’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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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자콥의 고향, 캥페르

전후 전위 예술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로 달아오른 프랑스 파리에는 수많은 젊은 보헤미안 예술가 들이 몰려들었다. 자콥은 훗날 야수파(큐비즘)라 불리는 보헤미안 화가들을 위해 ‘정신적 지주’ 아폴리네르와 더불어 이론가이자 대변자 역할을 했다. 이는 당시 파리에서 등장했던 셀 수도 없는 화풍과 학파들 중, 오늘날까지 야수파가 인정받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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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


자콥은 피카소가 그린 작품 중 최고의 걸작 중에 하나인 ‘아비뇽 여인들'이라는 작품에 직접 제목을 붙여준 것으로 유명하다. 괴기스러움에 가까운 기하학적인 인물과 배경 묘사로 훗날 예술계에 충격을 던졌던 피카소의 작품을 처음 대면한 자콥은 스페인의 수도 바르셀로나에 있는 유명한 사창가의 이름을 작품명으로 선사했다. ‘보헤미안들의 대변가’이자 시인이었던 막스 자콥이 아니었다면 절대 발휘할 수 없는 작명 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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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레지스탕스 지도자 장 물렝


이러한 자콥의 자유로운 사상에 매료된 대표적인 친구들로는 시인 장 콕토(Jean Cocteau)와 영국화가 크리스토퍼 우드(Christopher Wood) 그리고 아메데오 모딜리아니가 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발발 후 나치에 맞서 싸운 프랑스의 전설적인 레지스탕스 지도자 장 물렝(Jean Moulin) 또한 이 무렵 자콥과 깊은 우정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막스 자콥은 모딜리아니와 3년간 열애했던 여류시인 베아트리스 헤이스팅스를 소개할 만큼 절친한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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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콕토의 실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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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가 그린 <장 콕토>


하지만 자콥은 ‘자유로움과 개성이 넘치는’ 보헤미안들의 사상과 예술을 대변했지만, 정작 본인은 전위 예술이 아닌 조요하고 평범한 삶을 추구했다. 때문에 그는 2차 세계 대전 기간 중이었던 1944년 게슈타포에 의해 은둔지였던 드랑시(Drancy)에서 체포되기 전까지 약 30년간 외부로 많은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남긴 작품으로는 소설 Saint Matorel (1911), the verses Le laboratoire central (1921), and Le défense de Tartuffe (1919)등이 유명하며, 그의 사후에도 유작들이 유가족과 친구들에 의해 추가로 발견되어 유고작으로 발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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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자콥이 숨진 드랑시 유태인 수용소


사실 게슈타포에 의해 '드랑시 유태인 강제 수용소’에 감금된 막스 자콥은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가 체포 후 4년 만에 숨을 거뒀다. 그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절친한 친구였던 파블로 피카소와 몇몇 친구들에 의해,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성당에 묘지가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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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2 21:27 2008/01/22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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