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와 함께 떠나는 전원여행


'인상파의 거장' 카미유 피사로는 1830년 서인도제도의 세인트토머스섬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향 세인트토머스섬은 오늘날 섬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다. 눈부신 바다와 아름다운 산을 보면 성장한 피사로는 화가로 데뷔한 이후에 아름다운 전원풍경과 그 곳에서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꾸준히 자신의 작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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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lle Pissaro


또한 피사로는 유화, 수채화, 동판화, 석판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수의 인상주의 작품을 제작했고, 8회에 걸친 인상파전에 모두 참여할 정도로 왕성한 창작욕을 불태웠다. 뿐만 아니라 그는 훌륭한 스승이자 미술 교육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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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lle Pissaro / The Tuileries Gardens, Rainy Weather



'정물화의 대가' 세잔느는 피사로를 일컬어 "내게 있어 아버지였다. 그는 배울 가치가 있는 사람이자 전능하신 신과도 닮은 사람이다"라고 극찬했고, 그의 다섯아들 역시 모두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에라니파’라는 유파를 결성해 활발하게 활동했다. 특히 장남인 뤼시앵 피사로는 영국에서 인상파 보급에 크게 공헌한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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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ien Pissarro / La Pointe de Cougoussa, Sunset


고양 아람누리 아람미술관에서는 오는 2009년 1월 6일부터 3월 25일까지 84일에 걸쳐 카미유 피사로와 그가 예술적 스승으로 모셨던 코로 그리고 다수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모아 소개하는 전시를 개최한다.

 

○ 전시명 : 피사로와 인상파 화가들 : 'Camille Pissarro: Family and Friends, Masterworks from the Ashmolean Museum'展
○ 일  정 : 2009년 1월 6일(화) - 03월 25일(수) / 약 84일
               오프닝 : 1월 5일(월)
○ 장  소 : 아람미술관(일산)
○ 주  최 : (재)고양문화재단
○ 후  원 : 고양시
○ 출품작 : 피사로 10점, 코로 2점, 타 인상파 5점 등
                총 90여점의 유화 및 소묘, 판화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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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3 15:11 2008/09/03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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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의 생전 사진(1861)

1839년 남프랑스의 엑상프로방스의 한 부유한 집안에서 오늘날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폴 세잔이 탄생한다. 그는 여느 명문가 집안의 자식들과 마찬가지로 고향의 법과대학에 입학한다.

하지만 그는 곧 지루한 법학공부에 염증을 느꼈고, 친구 에밀 졸라의 권유로 파리의 아카데미 스위스로 학교를 옮겼다. 고향 친구인 에밀 졸라와 세잔의 우정은 평생을 지속된다. 한편 세잔은 파리에서 훗날 ‘인상파의 거장’으로 불리는 화가 피사로 그리고 기요맹과 인연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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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에게 책을 읽어주는 폴 세잔


그는 처음에는 인상파전에 참여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곧 그들과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한다. 세잔이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는 사물과 풍경에 대한 묘사였다. 특히 그는 ‘정물화’를 그리는 것에 몰두했다.

그러나 이러한 세잔의 작품은 처음에는 비평가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된다. 사람들은 세잔을 정신병자 취급했고 결국 세잔은 1986년 파리를 떠나 낙향한다. 그는 정물화를 그릴 때 단순히 사물을 정교하게 캔버스 위에 옮기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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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의 고향 엑상프로방스의 거리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이라도 구도를 바꾸면서 사물에 닺는 빛의 양을 조절했고, 심지어 모델을 놓고 초상화를 그릴 때에도 수십 번씩 포즈를 바꾸게 하는 것을 예사로 여겼다. 실제로 그의 유명한 그림 중에 ‘사과’를 그린 정물화가 많은데, 그가 그리던 사과가 썩어버리자 석고로 모형사과를 만들어서 그림을 완성했다는 일화는 그림 특히 정물화에 대한 그의 완벽주의를 엿보게 한다.

그가 그린 정물화 중에 어떤 그림은 3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도 있으며, 풍경화 역시 2년이 넘는 시간을 공들여 완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근 이러한 노력을 통해 “자연은 구형 ·원통형 ·원추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는 자신만의 미술관을 확고하게 작품 속에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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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에 걸쳐 완성한 정물화

결국 그를 비웃던 평론가는 물론 미술에 대해 무지했던 일반인들도 세잔의 작품을 인정하게 된다. 그는 1906년 비오는 날 풍경화를 그리던 도중 벼락을 맞고 숨을 거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에도, 병역을 기피해 추적을 당하던 도중에도. 오직 그림밖에 모르던 화가에게 어울리는 최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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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의 자화상


그의 죽음 이후 파리에서 열린 첫 번째 회고전은 훗날 큐비즘이 태동하는 출발점이 된다. 파블로 피카소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역시 파리에서 열린 세잔의 회고전을 받고 깊은 감명을 받았던 젊은 화가 중에 한 명이었다. 오늘 미술사에 이런 명언이 있다 “현대 미술에 피카소가 없으면 미술사 책의 양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폴 세잔이 없었다면 피카소라는 천재 화가는 탄생하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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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9 23:10 2008/01/29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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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느 에뷔테른이 모딜리아니를 만나 사랑을 나누기 전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녀는 엄격한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또한 잔느는어린 시절부터 화가를 꿈꿨고, 악세사리를 직접 만들 정도로 손재주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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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의 잔느 에뷔테른


잔느의 그림 선생님이자 좋은 친구였던 그녀의 오빠는 잔느의 재능과 꿈을 잘 이해주었다. 잔느의 오빠는 15살이 되던 해에 그녀를 프랑스에 있는 몽파르나스 미술학교에 입학시켰다. 그곳에서 잔느는 드로잉에 특출한 재능을 보였다. 또한 잔느는 당신 몽파르니스 주변의 카페와 술집에 몰려든 젊은 화가들과 친분을 나누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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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느 에뷔테른의 실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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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느 에뷔테른의 실제 모습


당시 몽프르나스에서는 '에콜 드 파리(파리파)'라고 통칭되는 프랑스 출신이 아닌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몰려 있었다. 제1차 대전을 전후해서 파리로 몰려든 이들은 어떤 유파를 이루지 않고 독창적인 작업 양식을 쌓아간 것으로 유명하다. 훗날 잔느와 사랑에 빠지는 아마데오 모딜리아니가 바로 이 '에콜 드 파리'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출신의 미남 화가였다.


그녀가 몽파르나스의 미술학교에서 남긴 작품들은 다른 미술사의 거장들이 남긴 소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감수성과 데생 실력을 갖췄다. 뿐만 아니라 잔느는 1905년부터 3년간 유행했던 인상파 작품들의 영향을 받은 듯 거친 붓 터치와 원색적인 색이 돋보이는 유화 작품도 종종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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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느가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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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8 22:10 2007/12/28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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