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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으로 추억을 재연하는 설치 미술가, 노동식 작가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고 달콤하다.


솜틀집 4남매 중 한 명 이었던 노동식 작가는 '솜을 먹고 자란 아이'다. 그의 아버지는 반평생 솜을 만드는 것으로 4남매를 키웠고, 학교를 보냈다.


이런 연유로 노동식 작가는 아버지의 반평생 일터였던 솜틀집의 풍경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왁자지껄한 시장통의 무허가 건물에 차려진 작은 솜틀집. 빨간 글씨로 ‘솜틀집’이라 쓰인 문을 밀고 들어가면 솜틀 기계의 맹렬한 소음이 귀를 때린다. 그리고 그 기계 한쪽에서는 작은 키에 마스크를 쓴 그의 아버지가 뭉클뭉클 쏟아져 나오는 하얀 새 솜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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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제작 중인 노동식 작가


아버지가 흘린 땀과 눈물의 결정체인 솜. 하지만 노동식 작가의 추억 속에 솜은 더 이상 노동과 고통의 상징이 아니다. 오히려 그에게 솜은 평생을 자식들에게 헌신했던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을 영원히 느끼게 해주는 매개체이다.


꿈을 이루어 하늘에 띄우다.


노동식 작가는 대학교 시절 학교 사람들과 떠난 가을 산행에서 비행기를 본다. 아직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본적이 없던 그는 가을 하늘에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유유히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며 언제가 자신도 저런 비행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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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식 / 떴다 떴다 비행기 / 2007



그는 젊은 시절 품었던 꿈을 지난 2007년 5월에 완성한 <떴다 떴다 비행기>를 통해 이루었다. 노동식 작가는 젊은 시절 보았던 비행기와 그 비행기가 내뿜던 하얀 비행운을 솜으로 완벽하게 재연해 하늘에 띄웠다.  


미로 속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다.


노동식 작가는 <풍경과 상상, 그 뜻밖의 만남전>에 <떴다 떴다 비행기>를 포함해 다양한 작품을 내놓았다. 그의 작품들은 미로처럼 구성된 전시장 곳곳에 마치 보물처럼 숨겨져 관객들의 발견을 기다린다. 그의 작품은 일상 속의 소품을 100% 솜으로 재연했기 때문에 보는 이로 하여금 친근함과 이색적인 느낌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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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노동식 작가는 <풍경과 상상...>전을 통해 2008년 최신작인 <운하>도 최초로 공개했다. 영화 속에서 튀어 나온 듯한 장관을 정교하게 묘사한 그의 작품과 함께라면 설치 미술작품이 선사하는 독특한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노동식 작가와 함께하는 <작가와의 대화> 개최: http://modilog.com/entry/even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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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상상...>전 개최기념 사진 공모전 응모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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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6 20:05 2008/08/0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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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의 생전 사진(1861)

1839년 남프랑스의 엑상프로방스의 한 부유한 집안에서 오늘날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폴 세잔이 탄생한다. 그는 여느 명문가 집안의 자식들과 마찬가지로 고향의 법과대학에 입학한다.

하지만 그는 곧 지루한 법학공부에 염증을 느꼈고, 친구 에밀 졸라의 권유로 파리의 아카데미 스위스로 학교를 옮겼다. 고향 친구인 에밀 졸라와 세잔의 우정은 평생을 지속된다. 한편 세잔은 파리에서 훗날 ‘인상파의 거장’으로 불리는 화가 피사로 그리고 기요맹과 인연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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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에게 책을 읽어주는 폴 세잔


그는 처음에는 인상파전에 참여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곧 그들과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한다. 세잔이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는 사물과 풍경에 대한 묘사였다. 특히 그는 ‘정물화’를 그리는 것에 몰두했다.

그러나 이러한 세잔의 작품은 처음에는 비평가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된다. 사람들은 세잔을 정신병자 취급했고 결국 세잔은 1986년 파리를 떠나 낙향한다. 그는 정물화를 그릴 때 단순히 사물을 정교하게 캔버스 위에 옮기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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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의 고향 엑상프로방스의 거리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이라도 구도를 바꾸면서 사물에 닺는 빛의 양을 조절했고, 심지어 모델을 놓고 초상화를 그릴 때에도 수십 번씩 포즈를 바꾸게 하는 것을 예사로 여겼다. 실제로 그의 유명한 그림 중에 ‘사과’를 그린 정물화가 많은데, 그가 그리던 사과가 썩어버리자 석고로 모형사과를 만들어서 그림을 완성했다는 일화는 그림 특히 정물화에 대한 그의 완벽주의를 엿보게 한다.

그가 그린 정물화 중에 어떤 그림은 3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도 있으며, 풍경화 역시 2년이 넘는 시간을 공들여 완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근 이러한 노력을 통해 “자연은 구형 ·원통형 ·원추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는 자신만의 미술관을 확고하게 작품 속에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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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에 걸쳐 완성한 정물화

결국 그를 비웃던 평론가는 물론 미술에 대해 무지했던 일반인들도 세잔의 작품을 인정하게 된다. 그는 1906년 비오는 날 풍경화를 그리던 도중 벼락을 맞고 숨을 거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에도, 병역을 기피해 추적을 당하던 도중에도. 오직 그림밖에 모르던 화가에게 어울리는 최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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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의 자화상


그의 죽음 이후 파리에서 열린 첫 번째 회고전은 훗날 큐비즘이 태동하는 출발점이 된다. 파블로 피카소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역시 파리에서 열린 세잔의 회고전을 받고 깊은 감명을 받았던 젊은 화가 중에 한 명이었다. 오늘 미술사에 이런 명언이 있다 “현대 미술에 피카소가 없으면 미술사 책의 양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폴 세잔이 없었다면 피카소라는 천재 화가는 탄생하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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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9 23:10 2008/01/29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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