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 혹은 눈속임: 식물들은 작은 씨를 퍼트리기 위해 화려한 색과 달콤한 과즙을 가진 열매를 맺는다. 이는 옷과 화장 그리고 악세사리로 스스로를 치장하느라 여념이 없는 인간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김문경 작가는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 <납작사과1>에서 식물의 형태를 변형시켜 시각적 충격을 주고 나아가 모든 대상 간에 상호작용하는 눈속임을 짚어냈다. 김문경 작가는 인간관계와 사물간의 상호 작용 그리고 나아가 사회에서 존재하는 모든 관계가 허상에 근거하고 있음을 작품 속에 담아낸다.
박제 혹은 재탄생 :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예술가는 특정 사물에 영원성을 부여함으로써 하나의 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
김문경 작가는 순리대로라면 썩어서 흙으로 돌아갈 식물을, 흙으로 재연하고 그것을 불에 구움으로써 썩지 않는 영원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녀가 영원할 수 없는 대상을 도자기로 만드는 행위는 박제이자 동시에 재창조이다.
작품 제작 중인 김문경 작가
익숙한 일상 또는 낯선 풍경 : 사람은 자신이 주로 살아가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 속에서 삶을 우리는 ‘일상’이라고 부른다. 김문경 작가는 일상적인 풍경 속에 자신이 변형한 식물을 배치함으로써 ‘익숙한 일상’을 ‘낯선 풍경’으로 자연스럽게 전환시킨다. 작가에게 묻다:예술가로 살아오면서 세상과 절대 타협할 수 없던 것이 있다면?
1839년 남프랑스의 엑상프로방스의 한 부유한 집안에서 오늘날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폴 세잔이 탄생한다. 그는 여느 명문가 집안의 자식들과 마찬가지로 고향의 법과대학에 입학한다.
하지만 그는 곧 지루한 법학공부에 염증을 느꼈고, 친구 에밀 졸라의 권유로 파리의 아카데미 스위스로 학교를 옮겼다. 고향 친구인 에밀 졸라와 세잔의 우정은 평생을 지속된다. 한편 세잔은 파리에서 훗날 ‘인상파의 거장’으로 불리는 화가 피사로 그리고 기요맹과 인연을 맺는다.
에밀 졸라에게 책을 읽어주는 폴 세잔
그는 처음에는 인상파전에 참여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곧 그들과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한다. 세잔이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는 사물과 풍경에 대한 묘사였다. 특히 그는 ‘정물화’를 그리는 것에 몰두했다.
그러나 이러한 세잔의 작품은 처음에는 비평가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된다. 사람들은 세잔을 정신병자 취급했고 결국 세잔은 1986년 파리를 떠나 낙향한다. 그는 정물화를 그릴 때 단순히 사물을 정교하게 캔버스 위에 옮기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폴 세잔의 고향 엑상프로방스의 거리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이라도 구도를 바꾸면서 사물에 닺는 빛의 양을 조절했고, 심지어 모델을 놓고 초상화를 그릴 때에도 수십 번씩 포즈를 바꾸게 하는 것을 예사로 여겼다. 실제로 그의 유명한 그림 중에 ‘사과’를 그린 정물화가 많은데, 그가 그리던 사과가 썩어버리자 석고로 모형사과를 만들어서 그림을 완성했다는 일화는 그림 특히 정물화에 대한 그의 완벽주의를 엿보게 한다.
그가 그린 정물화 중에 어떤 그림은 3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도 있으며, 풍경화 역시 2년이 넘는 시간을 공들여 완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근 이러한 노력을 통해 “자연은 구형 ·원통형 ·원추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는 자신만의 미술관을 확고하게 작품 속에 담아낸다.
3년에 걸쳐 완성한 정물화
결국 그를 비웃던 평론가는 물론 미술에 대해 무지했던 일반인들도 세잔의 작품을 인정하게 된다. 그는 1906년 비오는 날 풍경화를 그리던 도중 벼락을 맞고 숨을 거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에도, 병역을 기피해 추적을 당하던 도중에도. 오직 그림밖에 모르던 화가에게 어울리는 최후였다.
폴 세잔의 자화상
그의 죽음 이후 파리에서 열린 첫 번째 회고전은 훗날 큐비즘이 태동하는 출발점이 된다. 파블로 피카소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역시 파리에서 열린 세잔의 회고전을 받고 깊은 감명을 받았던 젊은 화가 중에 한 명이었다. 오늘 미술사에 이런 명언이 있다 “현대 미술에 피카소가 없으면 미술사 책의 양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폴 세잔이 없었다면 피카소라는 천재 화가는 탄생하지도 못했다”
트랙백★ 나를 아침 식탁에 앉혀놓은 그림 - 클레즈, 헤다의 정물화 4점초하뮤지엄.넷 chohamuseum.net2008/02/12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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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자 마자 피어오른 "숭례문 화재" 사건으로 국민모두의 가슴이 무너져내렸습니다. 지난 1962년 1호로 지정된 국보가 잿더미로 사라진 허상을 보면서, 우리모두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먼저 삼가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수습하고 추스려야 할 때입니다. 이제 합심하여 속히 복구해야 하고 복원작업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관련 정부와 해당 기관은 엄중 책임을 져야할 것이며, 앞으로의 관리 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