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산책가'의 검색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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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25 [신이 질투한 천재] 밤의 화가, 툴루즈 로트렉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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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화가' 툴루즈 로트렉

신은 천재에게 재능을 내려주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빼앗아 간다. ‘밤의 화가’ 또는 ‘물랑루즈의 화가’라 불렸던 툴루즈 로트렉 역시 신이 내려준 재능을 아주 짧은 시간동안 뽐내다간 천재 화가였다.
그는 출생부터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다. 그의 부모님은 모두 명문가의 자재였지만, 동시에 사촌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결국 근친상간을 통해 세상의 빛을 본 로트렉에게 세상은 호락호락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실제로 로트렉은 “다리 길었어도 화가는 되지 않았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신체적 콤플렉스가 심했다. 그는 어린 시절 겪은 2차례의 사고로 150cm 남짓에서 성장이 멈춰버렸다. 사고의 원인은 근친으로 태어난 그에 대한 고의적 테러였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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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랑루즈의 무희' 잔 아브릴

어쩌면 그가 자신의 작품에 물랑루즈의 무희 ‘잔 아브릴’을 자주 등장시켰던 것도 그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설에 따르면 로트렉은 아브릴을 연모했지만, 그녀는 로트렉의 사랑을 매몰차게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구한 운명을 살았던 로트렉이 귀족과 창녀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였던 잔 아브릴의 운명적 고민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던 것은 틀림없다.


로트렉은 알콜중독과 정신 착락으로 1899년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다가 퇴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병원에서도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죽을 때까지 약 1500여점이 넘는 수채화와 유화 그리고 데생을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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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랑루즈의 포스터


로트렉이 처음 프랑스 파리에서 화가로 명성을 얻은 것은 파리의 유명 카바레 ‘물랑루즈’의 포스터 작품을 통해서였다. 그는 카바레는 물론 프랑스 사회에서도 가장 바닥이라고 할 수 있는 ‘창녀촌’을 주제로 하는 그림에도 애착을 보였다.  그에게는 그림을 통해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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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를 즐기는 물랑루즈의 무희들


때문에 그의 작품 속에는 명문 귀족이나 프랑스 파리의 화려한 면보다는 어두운 밤거리와 으슥한 카바레 그리고 악다구니가 오가는 창녀촌의 풍경이 더 많다. 이러한 로트렉의 작업은 그가 ‘밤의 산책가’라는 또 다른 별명을 얻는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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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댄스홀


그는 빈센트 반 고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진다. 동시에 그의 작품은 젊은 시절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을 찾았던 또 다른 천재 화가 피카소에게 영향을 끼친다.  불과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로트렉. 하지만 그는 오늘날 전통적 회화 양식에 반기를 든 진보적이고 천재적인 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2007/12/25 17:55 2007/12/2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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